소프트웨어 없는 생산혁명, 5,000조 하드웨어 베팅에 대한 질문

7월 3일, SK텔레콤은 <SK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2029년부터 1단계 5GW 가동, 중장기 전국 15GW, 총 1,000조 원 – 정부가 총 4,755조 원 규모로 묶어 부르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한 축이자, 같은 날 6대 그룹이 영남권에 쏟아낸 312조 원 투자의 중심축입니다. 1단계에만 여의도 면적의 부지 75만 평과 GPU 300만 장, HBM 2,400만 장, 350조 원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5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또 페이스북에 ‘AI 생산혁명론’을 올렸습니다. AI는 기술혁명이 아니라 생산혁명이며,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전력망을 깔고 공급망을 조직하는 생산 플랫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AI 국부론> 에서 AI를 국가전략자산으로, 국가가 컴퓨팅 인프라를 소유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생산혁명론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지금의 이 계획들이 걱정됩니다. 컴퓨팅 인프라가 국가전략자산이라는 명제는 옳지만, 옳은 명제 위에서도 비정상적인 배분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1. 물론, 생산혁명론은 옳다

AI 시대의 국력은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지능을 생산할 전력과 연산의 총량으로 결정된다는 진단과 방향성은 정확합니다. 지능을 수입하는 나라와 생산하는 나라의 격차는 복리로 벌어지고,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 관점에서 SK의 5GW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지능 순수출국 지위를 노려볼 수 있는 중요한 베팅입니다.

구조적 강점도 실재합니다. SK는 HBM(글로벌 출하량 점유율 1위), 전력,에너지솔루션,통신망,데이터센터 구축/운영 역량을 한 그룹에 모두 가진 어떻게 보면 지구상 유일한 기업집단입니다.

전 세계 하이퍼스케일러가 HBM 확보 전쟁을 벌이는 시대에 메모리 공급망을 완전하게 내재화한 AIDC는 어쩌면 엄청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영남이라는 입지도 중요합니다.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기저 전력에다가, 자동차,조선,화학의 제조 수요처를 동시에 낀 땅은 한국에 여기뿐입니다.

경부고속도로가 물류비를 낮춰 수출 제조업을 일으켰듯, 토큰 단가를 낮춘 인프라는 산업 전반의 지능화 비용을 낮출 것입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초과이익이 배당으로 소진되지 않고 국내 지능 생산설비로 재투자된다면, ‘부품 수출국’에서 ‘지능 생산국’으로 퀀텀점프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는 생산혁명론의 논리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생산혁명론이 하드웨어 올인론이면 안됩니다. 김용범 실장도 쓰신것처럼 생산체계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라 이를 조직하는 지식과 사람을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본은 한쪽으로만 흐릅니다. 적어도 지금 보이는 청사진 안에서는 하드웨어 일변도로 보입니다. 모델, 차세대 아키텍처, 이 인프라 위에서 돌아갈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물론 지난 발표를 보면, 스타트업 육성도 있고,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도 있고 하지만, 거기에 얼마를 투입하겠다는 얘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2. 스케일 법칙을 절반만….

현재도 컴퓨트를 늘리면 성능이 늡니다. 스케일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그래프의 모양을 봐야 합니다. 성능은 컴퓨트의 로그를 따라 늘어나는데, 같은 폭의 성능 개선에 필요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는다는 뜻입니다. 지수적으로 돈을 태워 선형으로 나아가는 게임이 현재의 스케일 법칙에 대한 현황입니다.

그런데, 에포크AI의 추정에 따르면 동일 성능 달성에 필요한 컴퓨트는 알고리즘 개선만으로 약 8개월마다 절반으로 줄어 왔습니다. 딥시크는 미국 프론티어의 수십 분의 1 비용으로 근접 성능을 보여주며 이 곡선이 이론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동일 성능 기준 토큰 가격은 연 10배꼴로 떨어져 왔습니다. 하드웨어는 비싸지는 방향(수요가 많아지만 가격이 오르는…)으로, 소프트웨어는 싸지는 방향(한번 만들어놓으면 계속 써서..)으로 움직입니다. 이 두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원 배분의 파레토 최적이 있습니다.

컴퓨트 없는 알고리즘, 알고리즘 없는 컴퓨트 둘다 말이 안됩니다. 최적점은 반드시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데, 현재의 하드웨어 중심의 전략이 그 최적점일 확률은 0이라고 봅니다. 정부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지원 사업이 없지는 않지만, 숫자를 보면, 수천조와 수천억의 차이는 구색맞추기처럼 보입니다.

5000조원의 100분의 1인 50조 원이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웬만한 프론티어 랩의 누적 조달액에 크게 꿀리지 않는 돈입니다. 국가 프론티어 모델 컨소시엄의 10년 훈련 예산, 포스트 트랜스포머와 월드모델 기초연구의 장기 체제, 국산 모델과 국산 칩의 공동설계 파이프라인, 산업 데이터와 에이전트 하네스 계층까지, 생산혁명론이 말하는 생산체계에서 소프트웨어 레이어를 통째로 세울 수 있는 규모입니다.

5GW에서 1GW를 덜어내는 대신 그만큼의 비용을 소프트웨어에 넣는다면? 그 1GW가 없어도 4GW만 되도 한국은 아시아 최대의 인프라 허브라고 봅니다.

김용범 실장의 플라이휠 개념을 빌려보죠. AI가 생산을 만들고, 생산이 데이터를 만들며, 데이터가 다시 더 강한 AI를 만든다는 선순환에서, 지금의 청사진이 채운 것은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인프라뿐입니다. 그 위에서 학습하고 개선될 ‘우리의 AI’라는 중요한 축이 비어 있습니다. 축 없는 플라이휠은 돌지 않습니다. 남의 축을 빌려 돌리는 순간, 알짜는 축의 주인한테 갈겁니다.

3. 세대 착오

GPU당 HBM 8장(2,400만을 300만으로 나눈), GPU당 전력 1.67kW(5GW÷300만)는 모두 현세대 Blackwell의 스펙입니다. 그런데 029년의 주력 칩인 Vera Rubin은 열설계전력이 2.3kW까지 오르고, Rubin Ultra는 GPU당 HBM 16스택 구성으로 갑니다.

2029년의 실제 칩으로 5GW를 채우면 GPU는 300만이 아니라 130만~150만 장입니다. HBM은 140만 장에 16스택을 곱하면 2,240만, 2,400만이라는 숫자와 비슷하긴 합니다.

그런데, 50TWh는 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5GW를 1년 내내 100% 가동해도 상한은 43.8TWh입니다. 365일 24시간은 8,760시간, 5GWx8,760시간은 43.8TWh가 나오죠. 괜히 시비거는거라 할 수 있겠지만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에서 물리 상한을 넘는 숫자가 나온다는 건 좀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타임라인도 애매 합니다. 확정된건 울산 100MW와 후속 900MW, 영남권 1GW 추가까지입니다. 2GW에서 5GW로 점프하기 위해서 부지도 수전 계약도 없습니다.

4. 또 한 번의 트랜스포머 모멘트가 온다면

2029년에 가동을 시작해 2030년대 중반에 완성되는 인프라는, 지금의 아키텍처가 그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가정에 있어야 할겁니다. 트랜스포머는 2017년에 나왔고 챗GPT 모멘트는 2022년에 왔습니다. 5년이면 판이 뒤집히는 동네입니다. 아니, 요즘에는 한달, 몇주에 한번씩 뒤집히는 동네죠.

지금 이 순간에도 상태공간 모델, 월드모델, 뉴로심볼릭 계열이 트랜스포머의 다음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 하나가 터지는 순간, 그러니까 또 한 번의 트랜스포머 모멘트가 오면, 연산 방법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최적화된 GPU 팜, 그 전력밀도와 냉각과 인터커넥트 토폴로지에 맞춰 지은 건물은 자산 특이성이 극도로 높은 구조물입니다. 범용 인프라가 아니라 특정 아키텍처를 위한 설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스케일링의 축이 사전학습에서 추론시간 연산으로 이동한 것은 추론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흐름이 맞다는 거고, 컨텍스트가 길어질수록 병목이 연산에서 메모리로 이동하는 것은 HBM 강국에 매우매우 유리한 흐름입니다. 거기다가 HBF도 있고, 하지만 전부 트랜스포머라는 전제 위의 이야기입니다. 아키텍처가 바뀌면 유리했던 전제부터 사라집니다. (물론 그래도 메모리 중심의 모델이 당분간 지속된다는 건 확실하다고 보긴 하지만요)

닷컴 시대의 광섬유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곘습니다. 1990년대 말 통신사들은 폭증할 수요를 확신하며 여기저거 대륙을, 해저를 광케이블로 덮었습니다. 방향으로는 맞았고, 인터넷 트래픽은 실제로 폭증했습니다. 그러나 시점과 가격이 괴리가 생겨서 어긋났고, 글로벌크로싱과 월드컴은 파산했으며, 다크파이버는 훗날 구글이 헐값에 가져갔습니다. ㅠㅠ

인프라는 살아남았고 투자자는 피눈물 흘리며 사라졌습니다. 같은 운명을 피하려면 단순히’언젠가 쓰일 것’이라는 방향의 확신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얼마에 쓸 것’이라는 시점과 가격, 확실한 계약이 필요합니다.

다시 생각해보죠. 아키텍처 전환기는 원래 후발국의 추월 창구입니다. 감가상각 중인 레거시가 없는 쪽이 새 패러다임에 먼저 올라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그러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숙기의 아키텍처에 국가 자본을 몰빵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전환 옵션을 포기하는게 아닐까요…다음 모멘트가 왔을 때 수천조의 매몰 자산은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발국의 유일한 특권은 가벼움인데, 우리는 지금 스스로 무거워지는 쪽에 전 재산을 걸고 있습니다.

5. 하드웨어 올인은 어떻게 끝났는가

모토로라의 이리듐은 위성 66기에 50억 달러를 태웠지만 상용 서비스 9개월 만에 파산했습니다. 위성을 쏘아 올리는 사이 지상 셀룰러망이 지구를 먼저 덮었고, 인프라는 완공되는 순간 구식이 되어 고철값에 팔렸습니다.

파나소닉은 PDP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자부심으로 2011년까지 증설 투자를 계속하다가, 시장이 LCD로 넘어간 뒤에 지은 공장의 결손을 안고 2013년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샤프는 LCD에서 이겼지만 중국 캐파라는 다음 세대에 졌습니다. 30년 누적 적자 1조 9,000억 엔을 남기고 2016년 폭스콘에 인수됐고, 자랑이던 사카이 공장은 결국 멈췄습니다.

샤프의 사카이 공장은 세계 최초 10세대 팹이라는 하드웨어 명목 용량에 집착하다가 기술 범용화 시기에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발 캐파 치킨게임에 압사당한 비극의 상징입니다.

일본 D램의 마지막 주자 엘피다는 2012년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파산 기록을 세우고 마이크론에 흡수됐습니다. 엘피다는 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나, 원천 IP(설계/공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공적 자금과 대출에 기댄 하드웨어 캐파(CapEx) 증설에만 매달리다 불황기의 치킨게임에서 삼성의 원가 경쟁력과 미세공정 기술에 밀려 2012년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로 파산했습니다.

우리나라 와이브로는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훈장과 함께 통신사들이 조 단위를 부었지만 LTE라는 다음 세대 앞에서 가입자를 잃고 2019년 주파수를 반납했습니다. NHK의 아날로그 하이비전은 30년의 투자 끝에 디지털 전환 한 번으로 표준째 소멸했습니다.

자 이렇게, 하드웨어에 너무 자본을 고정하다보면 세대가 바뀌는 속도에 밀려날 위험이 크다는 말입니다.

IP 없는 하드웨어가 대가를 지불한 판례는 더 아픕니다. 한국의 CDMA가 그 원형입니다. 세계 최초 상용화의 하드웨어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원천 IP는 퀄컴의 것이었고, 단말 매출의 5% 이상이 로열티로 샌디에이고에 송금됐습니다. 한때 퀄컴 전체 매출의 40%가 한국에서 나왔고 연 2조 원 안팎, 누적 수십조 원이 건너갔습니다. 퀄컴세라는 단어가 생겼고, 공정위가 1조 원대 과징금을 때린 뒤에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만 D램도 있죠. 20년간 수십조 원을 팹에 부었지만 핵심 기술은 끝까지 미국,일본,독일의 라이선스였고, 2008년 치킨게임이 오자 자체 기술 없는 캐파부터 무너졌습니다. 파워칩과 프로모스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고 대만은 D램에서 사실상 퇴장했습니다.

IBM PC…….OS와 CPU라는 IP를 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다 가져갔습니다. IBM은 2005년 PC 사업을 레노버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노키아 사례도 있습니다.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핸드폰 회사였죠. 하드웨어 제조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죠?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iOS와 앱스토어(App Store)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플랫폼을 주도하면서 노키아는 사라졌습ㄴ다.

물론 성공한 하드웨어 베팅도 있습니다. 불황기마다 역설적으로 증설한 삼성의 D램이 그랬고, TSMC의 파운드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둘 다 남의 기술을 사서 깐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정 IP를 쥐고 원가를 가장 낮췄으며, 이미 수요가 검증된 시장에서 싸웠습니다. 하드웨어 베팅이라서 이긴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성을 쥐고 이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5GW 아니 15GW는 이 공통분모 중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칩은 사 오고, 모델은 빌리고, 수요는 미확보입니다.

5GW 계획의 리스크도 고민해야 합니다. 세대 리스크(GPU 4~5년 수명), 기술 리스크(트랜스포머 전제), IP 리스크(칩도 모델도 남의 것), 수요 리스크(앵커 미확보). 이 넷을 동시에 안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6. 칩은 소프트웨어의 짝꿍

SK텔레콤 발표대로라면, 1단계 총투자의 절반 이상, 170조~220조 원이 GPU 300만 장의 대금으로 엔비디아 한 회사에 흘러갑니다. 연 75만 장씩 조달하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GPU 생산의 8~10%를 사들이는 세계 5위권 구매자가 되겠지만, 이게 맞는걸까요? 국가전략자산의 심장이 외국 기업의 제품 로드맵과 가격표, 그리고 수출통제 문구 한 줄에 좌우됩니다.근데 이거 가져올 수나 있을까요?

같은 시기에 빅테크들은 모하고 있을까요? 구글은 7세대 TPU를, 아마존은 트레이니엄을, 메타는 MTIA를 돌리고, 오픈AI는 브로드컴과 10GW 규모의 자체 칩을 설계합니다. 2026년에는 ASIC(자체칩)출하량이 GPU를 넘어선다는 전망까지 나와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GPU 고객들이 GPU에서 탈출하는 시대에, 한국은 역사상 최대의 GPU 구매 계약을 국가전략이라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들도 여전히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입니다. 차이는 대안을 쥔 채로 산다는 것입니다. 독파모때도 제가 계속 얘기하는 논리인데, 대안이 있는 구매자와 없는 구매자는 협상력부터 다릅니다. 자체칩은 당장 GPU를 대체해서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의 협상력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되는데 우리는 못할까요? 아니면 안될까요? 중요한 지점은 팹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습니다. TPU가 존재하는 이유는 구글이 자기 모델과 자기 프레임워크와 자기 수요를 갖고 있어서입니다. 칩은 소프트웨어의 그림자입니다. 최적화할 자사 워크로드가 없는 칩은 실리콘 조각일 뿐입니다. 한국에도 NPU를 설계하는 멋진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 회사들에게 없는 것은 팹 접근이나 보조금이 아니라, 함께 최적화해 줄 국산 모델과 프레임워크라는 수요입니다. 그래서 5GW의 일부를 국산 NPU에 배정하는 쿼터는 무조건 필요합니다. 그 NPU가 겨냥해 최적화할 국산 모델과 프레임워크라는 수요가 없다면 쿼터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보조금으로 끝납니다. 소버린 AI를 표방한 국가 인프라가 결과적으로 역사상 최대의 엔비디아 종속 계약이 되는 역설 – 그 역설을 푸는 열쇠는 소프트웨어 투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7. 토큰은 어디로 흐르는가

자 토큰팩토리, 토큰을 생산하는 AI 팩토리 좋습니다. 그런데, 이 토큰을 누가, 누구의 모델로 삽니까. 한국 내수 추론 수요가 2030년까지 5GW를 소화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계획의 현실적이려면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를 앵커 테넌트로 세워야 할겁니다. 리스크를 줄이는 합리적 선택이겠지만, 이 그림이 우리가 원하는 그림일까요?

한국이 전력과 감가상각과 운영을 부담해 토큰을 찍고, 그 토큰 위에서 돌아가는 모델은 해외 프론티어의 것이며, 토큰당 마진의 대부분은 모델 소유자가 가져갑니다.

데이터센터 호스팅의 마진과 프론티어 모델의 마진은 자릿수가 다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토큰의 양은 늘지만 국내에 귀속되는 토큰의 가치는 늘지 않습니다. 제가 국민총지능생산(GIP)이라 불러온 관점으로 말하면, 토큰의 GDP는 늘어도 토큰의 GNI는 늘지 않는 구조가 되어버리는 거죠. GDP에서도 토큰에 대한 결제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또 달라질겁니다.

그러다보면, 지능 생산국이 아니라 지능 위탁생산국이 되버립니다. 반도체를 조립해 수출하던 나라가 이번에는 지능을 조립합니다. 브랜드는 남의 것인 채로 말입니다.

국내 기업과 정부가 이 데이터센터에서 토큰을 쓰는 경우에도, 자국 모델(물론 독파모도 있겠지만요. 지금의 지원으로 택도 없습니다)이 (제대로) 없는 한, 알맹이는 모델 사용료라는 이름으로 해외 프론티어에 송금됩니다. 반도체로 번 외화를 우리 공장과 우리 사무실에서 남의 지능을 돌리는 사용료로 되돌려 보내는 순환, 수출로 벌어 갖다 바치는 구조입니다. 인프라에 투자할수록 사용료 유출이 커지는,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구조를 국가 단위로 설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진짜로 필요합니다.

위탁생산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TSMC는 위탁생산으로 세계를 쥐었습니다. 그러나 TSMC의 힘은 대체 불가능한 공정 기술에서 나옵니다. 전력과 부지와 GPU 구매력은 대체 가능합니다.

중동은 더 싼 전기를, 동남아는 더 싼 땅을 들고 같은 게임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대체 가능한 요소만으로 조립하면, 가격 경쟁이 중요합니다. 대체 불가능성은 어디서 올까요. 자국 모델, 자국 데이터, 자국 소프트웨어 스택, 결국 이 계획에서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는 지점에서 옵니다.

8. 350조의 무게

1단계 5GW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350조는 SK텔레콤 연매출의 약 20배(2025년 연결기준 18조원 매출)로, 투자 여력을 넘어서며 결국, 연기금,국부펀드,해외 자본,프로젝트 파이낸싱,금융기관 대출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350조는 일회성 건설비가 아닙니다. GPU의 경제수명은 4~5년입니다. 5GW의 연산력을 유지하려면 세대마다 또 다시 사야 하고, 대충 따지면 연 40조~70조 원이 영구히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이 계획은 한 번 짓는 인프라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일종의 구독료입니다.

구축 효과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350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국내 자본시장과 연기금, 공적자금에서 나옵니다. 그 돈이 데이터센터로 빨려 들어가는 만큼 바이오와 콘텐츠, 그리고 정작 스타트업으로 갈 자본은 마릅니다. 하드웨어 올인은 재정 배분의 문제이기 전에 국민경제 전체의 포트폴리오 문제입니다. 기준 금리 오르면? 한계기업들이나 스타트업, 주택담보대출, 소상공인 대출은 어떻게 될까요? 또 이자지원을 해야할까요?

규모의 감각도 필요합니다. 350조는 한국 GDP의 13% 안팎이고, 1,000조는 40%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한 축일 뿐입니다. 정부가 묶어 부르는 3대 메가프로젝트 전체는 4,755조 원 – 반도체 800조, AI 데이터센터 573조를 포함해 GDP의 2배에 육박하는 숫자가 너무 쉽게 얘기됩니다.

다년에 걸친 민간투자의 합산이라 해도, 한 나라의 자본 배분이 이 정도로 한 방향을 가리킨 전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스타게이트가 자국 GDP의 2%가 안 되는 베팅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우리는 경제 체급 대비 스무 배쯤 무거운 판돈을 올리는 셈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 판에서 져도 미국입니다. 한국은 이 판에서 지면 잃는 것이 이 판만이 아닙니다. 경제규모 대비 지속가능성을 얘기하는 건 신중하자는 걸 넘어서서 생존하자는 얘기입니다.

전력과 메모리도 공짜가 아닙니다. 50TWh는 국가 전체 전력소비의 8~9%에 해당하는 신규 부하로, 반도체,철강,이차전지와 전력을 가지고 싸웁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인플레이션을 견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비용이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전가되면 제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기모순이 생깁니다. HBM 2,400만 장의 내부 배정도 생각해 봅시다. 3년 치 고객 수요가 이미 공급능력을 초과한 상태에서는 제로섬입니다.

주주들이 용납할까요? 해외에 보내면 돈많이 버는데, 국내에서 일종의 계열사 거래로 혹시라도 시장가 이하로 정산하면? 주주이익 침해입니다. 그렇다고 높게 받으면? AIDC 원가가 오르겠죠. 수직계열화의 장점도 있지만, 공급안전성은 좋겠지만, 공짜 마진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 우리가 써버리려고 하면, 글로벌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대안을 찾겠죠. 내부꺼 강화하려다가, 글로벌 주도권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9. 사용 기반 생태계의 중요성

제가 비판하는게 그러니까, 하드웨어 말고 소프트웨어 쓰자! 뭐 이런얘기만 하는건 입니다. 그렇다고, 모델이든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만 하는 전략도 결국 같은 함정에 빠집니다. 기술은 사용되어야 발전합니다. 모델도 반도체도 데이터센터도, 실제 기업과 공공의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고, 실패하고, 개선되고, 비용 구조가 검증되는 루프 안에서만 경쟁력을 얻습니다.

소비 없는 기술은 랩 자산에 머물고, 사용 없는 인프라는 매몰 비용이 되죠. 좋은 모델을 만들자, 국산 AI 반도체를 키우자, 이것만으로는 단순히 공급 중심 사고의 변주일 뿐입니다. 어떤 것을 쓸지, 우리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돌려 봐야만 답이 나옵니다.

특정 기업 얘기는 하는게 좀 그렇긴 하지만,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Dongsoo Lee, 권세중, 유민수 이 분들이 설립한 A2SYS 얘기인데요, CTO 를 맡고 있는 KAIST 유민수 교수팀이 IEEE HPCA에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외부 도구를 호출하며 일하는 AI 에이전트 워크로드에서 GPU는 실행 시간의 최대 54.5%를 유휴 상태로 보냅니다. 응답 시간은 단순 생성형 AI의 최대 153.7배, 질문 한 건의 전력 소비는 348Wh로 136.5배에 달합니다.

하루 137억 건의 에이전트 요청을 가정하면 전력 수요는 198.9GW, 결국 이 문제 해결안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토큰 최적화, 효율화가 절대적으로 매우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이 숫자를 가지고 “그봐 그러니까 더 지어여는거 맞지?” 라고 할수도 있죠. 물론 효율이 좋아질 수록 토큰은 싸지고, 그러면 더 많이 소비될 겁니다. 제본스의 역설은 AI에서도 작동하며, 그래서 인프라 수요의 방향 자체는 계속 커질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토큰은 커머디티가 되고, 와트당 실효 연산이라는 원가가 중요해집니다. 수요가 폭발하는 시장일수록 비효율적인 공급자부터 사라집니다. 트래픽이 폭증하던 바로 그 시기에 광섬유 사업자들이 파산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의 함의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GW는 틀린 KPI라는 겁니다. 문제는 명목 용량이 아니라 실효 연산입니다. GPU의 절반이 놀고 있다면 5GW의 캐파는 실효 2.5GW입니다. 유휴율을 10%포인트 낮추는 스케줄링,서빙,하네스 소프트웨어는 500MW 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과 같겠죠. 소프트웨어는 이 계획에서 가장 값싼 발전소라는 얘기입니다.

둘째, 중요한건 공동설계입니다. 모델과 하네스, 인프라와 전력을 함께 최적화하는 역량, 그런데 이 역량은 실제 워크로드를 대규모로 돌리고, 병목에 부딪히고, 고쳐 본 조직만이 갖습니다. 짓기만 해서는 영원히 배울 수 없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A2SYS가 가는길을 응원하고 있지요. 가장 많이 돌려본 사람들이 그걸 최적화하겠다는거, 그런걸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좀더 보완해야할 전략은 이렇다고 봅니다.

반도체, 조선, 바이오, 제조, 의료, 공공행정, 한국이 세계 수준의 도메인을 가진 산업의 실제 업무 흐름 안으로 AI를 밀어 넣는 것. 공공이 국산 모델과 국산 칩의 첫 번째 대량 사용자가 되어 실전에서 호출하고, 실패시키고, 개선시키는 실증 루프를 만드는 것. 그러려면 공공이 쓸 수 없게 막아 둔 구조, 망분리를 비롯한 보안 규제의 낡은 층위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국 AI 전략의 다음 단계는 기술 확보에서 사용 기반 생태계 구축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전환에 실패하면 5GW건 15GW건 잘못하닥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실험실이 됩니다.

****** 국가는 몰빵하지 않는다

생산혁명기의 국가 전략은 어차피 불확실성 아래의 베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헤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도박사도 판돈 전부를 한 판에 걸지는 않죠. 켈리의 공식이 가르치는 단 하나의 교훈은, 기대수익이 아무리 커도 파산 확률이 0이 아니라면 베팅의 크기를 줄이라는 것입니다. 국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국가의 전략은 기대수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실패의 회피 위에 설계돼야 합니다.

그래서 인프라 투자의 5분의 1만이라도 모델과 차세대 아키텍쳐, 데이터와 인재로 돌리는 국가 포트폴리오를 만들자는 겁니다. 지금도 그런 계획들이 파편적으로 들어가 있는거 봤지만, 5000조안에 얼마나 들어있을까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5,000조도 우리 경제 규모에 맡게 다시 돌아보고 검토해봐야 합니다.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지역에 이런 기업투자가 엄청나게 일어난다고 지역이 다 좋아지기만 할까요? 금리가 올라가고, 대출이 안나오고, 다니던 작은 회사들이 줄도산 하는 그러한 경제적 연쇄효과는 과연 잘살게 할까요?

그리고. 또 국산 모델과 칩을 공공과 핵심 산업의 실제 업무에 배치하고 실패시키고 검증하는 사용 기반 생태계에 또 5분의 1이 들어가야 합니다. 데이터센터는 시장이 수익성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산이니 민간 자본이 주도하고 정부는 전력계통과 인허가로 조력합니다. 반면 포스트 트랜스포머와 월드모델 같은 기초연구, 국가 단위의 데이터,평가 인프라는 시장이 과소투자하는 영역이니 국가가 직접 챙겨야겠죠.

지금의 설계는 정확히 거꾸로 갈 위험이 있습니다. 시장이 할 수 있는 하드웨어에 국가가 올라타고, 국가만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초는 덜 신경쓰는 겁니다.

이 인프라 위에서 돌아갈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느 산업의 어느 현장에서 돌려 볼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좀더 명확하게 그려야 합니다.

김용범 실장님의 생산혁명론의 마지막 문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생산체계를 조직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생산체계에는 소프트웨어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콘크리트와 실리콘만으로만 만든 생산체계는 혁명이라기보다는 위탁생산입니다. 5GW 위에서 누구의 지능이 도는가가 그 국부의 주인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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