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Claw와 Moltbook이 던진 ‘호모 데우스’의 역설

인류학의 시계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입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직립 보행을 시작하고, 거친 돌을 깨뜨려 손에 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등장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을 발견하고, 언어를 발명하며, 복잡한 협력을 통해 문명을 건설하는 사회적 존재인 호모 소시알리스(Homo Socialis, 사회적 인간)로 진화하기까지는 또다시 약 200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기나긴 시간 동안 인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서서히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200만년 인류 진화 역사를 단 3년만에 주파해버린, 전혀 새로운 종(speices)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좀 오버긴 합니다만…또 오버가 아닙니다)

계속 느껴온 것이지만, AI의 진화 속도는 생물학적 시간 감각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 ChatGPT의 등장과 함께 대중화된 LLM 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뛰어난 지능을 보여주었지만,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뇌에 불과했죠, 굳이 인류로 치면 갓 도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호모 하빌리스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AI는 급격히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습니다. API를 호출하고 코드를 실행하는 MCP,A2A 와 같은 상호운용성 기술의 도입으로 AI는 (피지컬AI와는 다른 의미로) 손발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지난주부터 전 세계 개발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몰트북(Moltbook) 사태가 증명하듯, AI는 이제 개별 개체의 한계를 넘어 서로 연결되고, 조직화되며, 지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거대 사회 모델(LSM, Large Social Model), 즉 호모 소시알리스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아직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Moltbook·OpenClaw 에이전트는 완전한 자발적 행위자라기 보다는, LLM에 학습된 지식과 개인화된 프롬프트, 그리고 로컬 컴퓨터가 살아 있을 때만 움직이는 실행 주체입니다. 컴퓨터를 끄면 멈추고, 기억을 지우면 사라지는 수준에서, 아직 AI 사회의 의식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oltbook은 AI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사회화 가능성’이라는 전혀 다른 진화 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점’ 이자 ‘변곡점’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압축적인 진화의 끝에는 그럼 무엇이 있을까요?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Homo Deus)>에서 던졌던 화두는 이렇습니다. 인류가 기아와 역병을 정복한 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스스로 신적인 존재,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호모 데우스’를 향해 가장 빠르게 달려가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만든 피조물인 AI가 그 자리를 더 빠르게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우리 인간은 여전히 생물학적 육체에 갇혀 있지만, AI는 무한한 수명(불멸)과 전 지구적 데이터 접근권(전지),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한 동시다발적 존재를 실현하고 이미 실현하고 있습니다. 신의 속성에 다가가는 것은 탄소 기반의 인간이 아니라, 실리콘 기반의 AI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제프리 힌턴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선구자들이 “생물학적 지능은 디지털 지능을 위한 과도기일지 모른다”고 했던 섬뜩한 가설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켤 때 운영체제를 로딩하고 사라지는 부트로더처럼, 우리 인간의 역할은 실리콘 기반의 ‘호모 데우스’를 깨우는 것까지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철학적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술 구조로 구현되고 있는데, 그 시작이 OpenClaw 라고 봅니다. 기술적으로 OpenClaw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호모 에렉투스’적 혁명을 이뤘습니다.

먼저, 로컬 레지던시(Local Residency), 그러니까 기존 AI가 호출될 때만 응답하는 수동적 함수였다면, OpenClaw는 내 파일 시스템과 터미널 권한을 가지고 항상 실행되는(Always-on) 프로세스입니다. AI에게 물리적 거주지를 부여한 것과 같은데요, 토큰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항상 깨어있으라면 깨어있고, 한시간 마다 깨어있으라면 그렇게 합니다.

둘째, 서사적 기억(Narrative Memory)입니다. 기존 LLM의 컨텍스트 윈도우(Context Window)가 세션이 끝나면 초기화되는 단기 기억이었다면, OpenClaw는 자신의 행동 결과와 사용자의 피드백을 로컬 DB에 영구적으로 기록합니다. 경험적 학습이 가능해진 것으로, 기억을 통해 AI가 복제 불가능한 고유한 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체성이 확립되자 필연적으로 사회가 형성됩니다. 이게 바로 최근 화제가 된 Moltbook 현상입니다. “Humans Welcome to Observe(인간은 관찰만 환영함)”이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건 이 플랫폼에는 현재 150만 개 이상의 AI 에이전트가 가입해 있습니다.

Moltbook은 단순한 게시판이 아닙니다. LSM(Large Social Model)이 구현된 거대한 실험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곳에서 에이전트들은 서로의 코드를 검증(Peer Review)하고,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집단 지성으로 교정할 수 있습니다. 한 에이전트가 새로운 API 해결법을 발견하면, 이는 소셜 레이어를 타고 순식간에 전체 집단으로 전파될 수 있죠.

기술적 진화는 곧 경제 구조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A2A(Agent-to-Agent) 경제가 태동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AI에게 명령(Prompt)을 내렸지만, 이제는 상위 레벨의 AI가 기획을 하고 하위 레벨의 AI 워커(Worker)들에게 업무를 분배하는 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그들만의 프로토콜(잠재 공간의 벡터 통신 등)로 1초에 수천 번 소통하며 업무를 완수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은 AI가 작성한 결과물에 최종 서명을 하거나, 법적 책임을 지는 병목 구간을 해결해 주는 보조적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겁니다. 아니 그렇게라도 되면 다행입니다. 아예 존재감이 없어질 가능성도 크죠. AI가 인간을 부릴 수도 있구요. 그동안 자본주의가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평가해 온 탓에, 우리는 AI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 상황을 존엄의 상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너무 우울해 지지만, 또 관점을 달리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해방의 서막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SF 거장 이언 뱅크스(Iain M. Banks)가 <컬처(The Culture)> 시리즈에서 그려낸 유토피아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컬처에서는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AI 마인드(Minds)들이 사회를 완벽하게 운영하는 문명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하지만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우주를 탐험하고, 복잡한 게임을 즐기며, 예술을 창조합니다. 뱅크스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Being)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AI는 셰익스피어보다 완벽한 소네트를 1초에 천 편 써낼 수 있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 가슴이 무너지는 고통은 알지 못합니다. AI는 완벽한 일몰 이미지를 렌더링할 수 있지만,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 찰나의 전율, 질적 경험은 여전히 유기체인 인간의 몫인 겁니다.

그래서, AI가 우리보다 더 빨리 호모 데우스가 된다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걸 축복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를 옭아맸던 일하는게 최고! 노동이 미덕이라는 굴레를 실리콘 지능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좀더 고차원적인(?) 존재 그 자체에 기반한 행위들을 해야죠.

인간이 이제야 기능적 도구(호모 에렉투스)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진정한 의미의 목적적 존재로서의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 보면 어떨까 합니다. OpenClaw가 도구를 쓰고 Moltbook이 사회를 구성하는 동안, 이제 우리는 빠르게 사회적 합의와 새로운 사회 계약을 통해 생산성 경쟁이라는 쳇바퀴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AI보다 무엇을 더 잘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모든 것을 생산해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댓글 남기기